진단·치료는 기본…장례까지 책임 반려동물 헬스케어 산업이 성장하며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에 투자업계 관심이 쏠린다. 이미 해외에서는 수천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이 속속 나오는 중이다. 2018년 설립된 모던애니멀은 2022년 7500만달러(약 1036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온·오프라인 원격 진료 서비스와 헬스케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온라인 원격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본드벳 역시 총 2억4350만달러(약 3365억원)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영국 펫보험 업체 매니펫츠는 기업가치 24억달러(약 3조3000억원)를 인정받으며 유니콘에 등극했다.
국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이 등장하고 있다. 질병 예방부터 진단, 치료, 사후관리, 장례까지 반려동물의 건강은 물론, 보호자의 편의도 책임진다. 지난 2월 대한수의사회와 글로벌디지털혁신네트워크(GDIN), 해마루반려동물의료재단 등으로 구성된 ‘반려동물 산업 육성 협의회’가 출범하며 스타트업 육성에 우호적인 환경도 마련됐다. 국내에서도 펫 헬스케어 분야 유니콘 등장을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다.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난 3월 제약회사가 기존 인체 의약품 제조시설을 활용해 반려동물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되며 동물용 의약품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한국동물약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동물약품 시장 규모는 약 1조4313억원으로 전년 대비 5% 성장했다.
지난해 7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반려동물 산업 전시회 ‘2023 케이펫페어’를 찾은 참관객들이 ‘오리즈’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프록시헬스케어 제공) 비만·치매 치료제
펫 분야 일라이릴리 노려
1. 알엑스바이오
반려동물 시장에서도 비만용 치료제는 다수가 주목하는 아이템이다. 미국 반려동물 비만도 지표 ‘신체충실지수(BCS)’에 따르면 비만도가 심각한 9단계와 바로 아래 단계인 8단계에 속하는 반려견 비율은 2007년 10%에서 2018년 19%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8~9단계 반려묘 비율은 19%에서 34%로 늘었다. 미국 반려동물비만예방협회에 따르면 2022년 미국 반려견과 반려묘 중 60%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으로 조사됐다.
이 시장에서 국내 스타트업 알엑스바이오가 게임체인저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동물용 비만 치료제 개발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서다. 알엑스바이오가 개발 중인 ‘RSVI-301D’는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리보핵산(miRNA) 기술을 접목시킨 동물용 당뇨병·비만 치료 후보물질이다. miRNA는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가장 작은 유전자로, 메신저리보핵산(mRNA)에서 단백질을 합성할 때 스위치 역할을 하고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 단백질 합성과 유전자 발현 이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질병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슐린 분비 베타 세포 기능을 회복시키며, 인슐린 저항성을 낮춰 당뇨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기전이다.
2. 카이저바이오
치매 치료제 개발에도 여러 스타트업이 뛰어들었다. 그중 한 곳이 카이저바이오다. 신경 보호와 항산화 기능 등을 갖춘 인지기능장애 치료 후보물질을 보유한 카이저바이오는 반려동물 치매를 치료하기 위한 신약을 개발 중이다. 복합적 치매 인자를 제거하는 신약이다. 하나의 치료제로 4~5개 인지기능장애 위험 인자를 조절·제거한다는 목표다. 현재 효능 평가를 마치고 독성시험과 물리화학적 성분 분석 등을 준비하는 단계다. 인지기능장애증후군을 가진 강아지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 오는 2026년까지 동물용 의약품 인허가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조영제·인공혈액·고압산소 치료
“사람처럼 진료” 동물 맞춤형 의료기
1. 오르바이오
검사나 시술 시 특정 조직이나 혈관이 잘 보이도록 투여하는 조영제 시장에서도 반려동물용 제품이 눈에 띈다. 오르바이오는 세계 최초로 동물용 초음파 조영제를 개발하고 상품화를 앞뒀다. 오르바이오가 개발한 조영제는 초음파 기기를 사용할 때 미세 기포를 체내로 주입해 초음파 반사를 증대시켜 혈관이나 조직 구조를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돕는 약물이다. 그동안 동물병원은 대부분 초음파 기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동물용 조영제 부재로 사용에 한계가 있었다. 진단에 한계가 있어 추가 검사가 필요해 보호자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기존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오르바이오의 동물용 초음파 조영제를 이용하면 방사선이 필요하지 않아 부작용 위험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검사 시간이 짧고, 혈관과 장기 형태까지 명확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2. 아트블러드
수혈용 인공혈액을 개발하는 아트블러드는 반려동물용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낸다. 현재 국내 반려견 수혈용 혈액의 90% 이상은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공혈견(반려견 수혈용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사육되는 개)으로부터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이 빗발친다. 이 점에 주목한 아트블러드는 수혈용 인공혈액 개발을 인간용에서 반려동물용으로 확대했다. 인간용보다 동물용 의약품 임상시험이 비교적 간단하기 때문에 내년 중으로 임상시험에 돌입한다는 목표다.
3. 셀씨존
고압산소 의료기기를 만드는 셀씨존도 주목받는다. 고압산소 치료란 고기압 상태에서 다량의 산소가 혈액에 녹아들게 해 체내 산소 농도를 높이고 저산소증을 개선해주는 치료법이다.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 혈류량이 증가해 혈관벽을 청소해주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만성두통, 어지럼증, 손발저림 등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준다. 셀씨존이 개발한 제품은 더 많은 산소를 몸속에 공급해주는 국내 유일의 2등급 동물용 기기다. 회사 측은 “국내 반려견에서 발병하는 피부염, 호흡기 질병 등 주요 질환 70% 이상이 고압산소 치료 효과가 있다는 점을 임상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피부·구강·항암제
입속 병균 잡고 항암제 골라주고
1.로킷헬스케어
로킷헬스케어는 2016년 4D 바이오프린터 ‘닥터인비보 4D2’를 개발했다. AI와 4D 바이오프린터를 활용해 환자의 괴사한 피부 조직을 재생 치료한다. 상처 부위를 AI로 측정한 뒤 재생 키트로 환자 지방 조직을 추출, 해당 조직을 4D 바이오프린터에 투입하면 바이오 잉크가 환부에 맞는 패치를 만들어낸다. 피부는 물론 연골 조직 재생에도 효과를 보였다. 사람에게 적용하기 위한 재생 기술이지만, 동물실험을 진행해 동물용으로도 효과를 입증했다. 로킷헬스케어에 따르면 미국에서 실시한 전임상 결과 재생 부위 연골세포가 환부에 투입되면서 정상 연골의 90% 가까운 강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7세 강아지를 대상으로 피부 재생 기술을 적용한 결과 45일 만에 완치되는 성과도 냈다. 오는 10월에는 일본 동물 의료기기 등록을 신청해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2. 브리지테일
브리지테일 역시 반려동물의 피부 관리를 돕는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반려동물의 피부 질환 예방과 개선에 목적을 둔다. 연구·개발(R&D)을 위해 글로벌 펫 푸드 기업과 동물의약품 기업, 뷰티 브랜드 연구원 출신으로 연구실을 꾸렸다. 대표 제품은 ‘페토세라’다. 피부 지질을 구성하는 ‘세라마이드’를 주원료로 사용해 피부 질환 예방과 개선 효과를 높였다. ‘세라마이드’는 K뷰티의 글로벌화와 함께 선풍적 인기를 끈 성분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천연 연마재를 사용해 반려동물이 먹어도 안전한 덴탈케어 제품 ‘덴티멀 더블액션츄’를 선보였으며, 지난 4월에는 일본으로 초도 물량 수출도 완료했다.
3. 프록시헬스케어
프록시헬스케어가 대표적이다. 정전기력을 활용해 문제를 일으키는 미생물막을 제거하는 원천기술 ‘트로마츠’를 보유 중이다. 이 기술을 활용해 사람용 구강케어 제품을 선보였는데, 당시 효과를 본 다수 구매자가 반려동물용 제품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명을 넘고 홈케어 니즈도 상당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리즈’라는 제품을 제작했다. 치약도 필요 없다. 동일 칫솔모 기준 일반 칫솔에 비해 미생물막 제거 효과가 6배 높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이 기술을 피부 질환에도 적용해 새로운 피부염증을 관리하는 신제품도 개발하는 중이다. 자극 없는 피부 세정으로 상처 부분의 피부 재생을 가속화하고 세정력을 시중에 있는 기존 제품 대비 2.6배 개선한다는 목표다.
4. 임프리메드
반려견을 대상으로 항암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도 주목받는다. 임프리메드는 혈액암에 걸린 반려견을 위한 항암제 추천 서비스를 운영한다. AI 모델을 통해 암세포의 다양한 생물학적 특성을 분석해 어떤 항암제가 가장 효과적일지 예측해주는 식이다. 현재 국내에서 처방되는 반려견 항암제 종류는 10개 정도인데, 항암제에 따라 치료 효과나 재발 가능성 등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재 미국 동물병원 250여곳 종양 전문 수의사가 약 6000마리 반려견을 대상으로 임프리메드 서비스를 활용한 항암 치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항암 치료 대상 질환을 늘리고, 항암제 추천용 유전자 검사 키트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5. 림피드
사료 영양분을 분석해주는 스타트업도 있다. 영양 전문 수의사와 정보기술(IT) 전문가가 의기투합해 설립한 림피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양분을 분석하는 플랫폼 ‘샐러드펫’을 운영한다. 국내 최대 펫푸드 데이터베이스(DB)를 보유한 플랫폼으로, 펫 푸드 시장의 ‘화해’를 표방한다. 화해는 화장품 성분을 분석해주는 국내 대표 뷰티 플랫폼이다. 사료 영양을 분석하고 큐레이션을 지원하며, 반려동물의 알러지원도 예측해준다. 급여 중인 사료와 반려동물의 질병 여부 등 총 7만마리 이상의 반려동물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자체 프리믹스 공장에서 생산하는 동결건조 사료 브랜드 ‘트러스티푸드’도 운영한다.
유전자 분석·사전 진료
동물병원 직접 안 가도 ‘OK’
1. 피터페터
반려동물 유전자를 분석해 검진이 필요한 항목을 알려주는 피터페터가 대표적이다. 유전자 검사 키트의 면봉을 반려동물 잇몸에 문질러 구강상피 세포를 채취해 피터페터에 보내면, 2~4주 안에 결과가 나온다. 검사 결과는 A4용지 200장에 이를 만큼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반려견의 경우 퇴행성 골수염과 녹내장 등 79개 검사 항목을, 반려묘는 다낭포성 신장 질환 등 39개 검사 항목을 확인할 수 있다. 유전병별로 반려동물 관리 방법과 건강검진 추천 항목 등을 추천해준다.
2. 닥터테일
미국 시장을 공략한 닥터테일도 눈길을 끄는 스타트업이다. 주요 서비스는 사전 진료다. 반려동물한테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가장 먼저 온라인 수의사에게 병원 진료가 필요한 상황인지 상담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보호자가 병원에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상황인지 먼저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다. 평소 다니던 동물병원에 보관된 의료 기록을 앱에 동기화하고, 반려동물의 이전 병력을 참고로 빠르고 정확한 상담을 제공한다. 미국 시장에서 부족한 동물병원과 수의사 수에 주목했다. 동물병원 진료 횟수 중 76%는 불필요한 방문이라는 데이터도 미국 시장을 공략한 요인이다.
3. 에이아이포펫
비대면 진료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사례도 나타난다. 에이아이포펫은 반려동물 건강관리 플랫폼 ‘티티케어’를 통해 반려동물 상태를 분석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호자가 스마트폰으로 반려동물의 눈이나 피부 상태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하면 관련된 이상 징후를 AI가 분석해 알려준다. 티티케어가 식별하는 건강 징후는 총 20가지다. 반려동물 특성에 맞춘 비만도, 적정 사료 급여량 등 건강 정보도 상세하게 제공한다. 가까운 동물병원과 약국 찾기 서비스는 물론, 지난 3월부터는 AI 분석 서비스와 연계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내놨다. 비대면으로 수의사와 영상통화 진료나 채팅 상담이 가능하다.
인터뷰 | 송명석 알엑스바이오 대표 “2027년 동물용 비만·당뇨 치료제 상용화 목표”
알엑스바이오는 세계 최초로 miRNA 기술을 접목한 동물용 비만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일라이릴리와 노보노디스크가 비만 치료제 개발로 대규모 자금을 쓸어 담듯, 반려동물 산업에서도 국내 스타트업이 신약 개발에 성공해 시장 선도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신라젠과 넥스턴바이오를 거친 바이오 전문가 송명석 알엑스바이오 대표를 만나 사업 계획과 시장 전망을 들어봤다.
송명석 알엑스바이오 대표.
Q. 동물용 비만·당뇨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배경이 궁금하다.
A.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신약 개발은 시간과 자본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 개발 과정에서는 동물 임상시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어느 날 수의사로부터 반려동물도 비만과 당뇨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비교적 필요한 시간과 자금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 어차피 동물실험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도전했다. 미국에서 연구 중인 로스비보테라퓨틱스와 손을 잡았다.
Q. 현재 신약 개발이 어느 단계까지 왔나.
A. 최근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고지방 고당분 식이(HFHSD)’의 제2형 당뇨병 유도 실험을 시행한 결과, 1회 투여로 6주간 정상 혈당 수치가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위고비와 젭바운드가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비만 치료제로 확장한 것처럼 알엑스바이오도 RSVI-301D 개발 시 활용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만약은 고양이, 당뇨약은 강아지를 대상으로 예비 효능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고, 하반기에 전임상을 시작한다. 내년에는 임상을 시작해 2027년 말 상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으로 여건이 된다면, 줄기세포나 암까지 연구하려 한다.
Q.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안정적 현금흐름이 필요할 텐데.
A. 반려동물용 제품 유통을 통해 현금흐름이 발생하고 있다. 반려동물용 칫솔이나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니트릴 장갑과 주사기 등이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김범준·이호준·김나연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9호 (2024.07.24~2024.07.30일자) 기사입니다]
출처 : https://www.mk.co.kr/news/economy/11117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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